

오스카상이라는 불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3월 15일 열렸다, 결과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작품상 등 6개, 〈씨너스 : 죄인들〉가 남우주연상 등 4개, 〈프랑켄슈타인〉이 미술상 등 3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주제가상 등 2개, <햄넷>이 여우주연상 등 1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다양한 작품에 대해 시상이 이뤄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주제가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국사회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수상소감 발표 중 자르듯이 광고로 전환되면서 차별적인 것이 아니냐 등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 이슈 이면에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진보적 진전을 살펴보려고 한다. 워낙 미국 아카데미는 보수적이고 자본적 성격이 강한 시상식이지만 이번 시상식은 진보적 의미에서 남다른 결과를 남겼고, 진보정치 혁신을 위해 대중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과제로 남겼다.

투쟁은 계속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먼저 작품상, 감독상 등 영화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최고의 작품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영광이 돌아갔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인데, 미국의 인종차별저항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는 작품으로 우리식으로 번역한다면 <투쟁은 계속된다>로 번역할 수 있는 영화다. 원작은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인데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전 세대 운동가와 지금 세대 운동가의 다른 점을 부각하며 구시대 운동가들의 도그마에 비판을 집중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와 달리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 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이어짐 등을 새로운 영화적 기법을 통해 다뤄 내용 뿐 아니라 영화 예술적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영화로 평가된다. 우리 소설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지금은 패배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계속 이어진다는 ‘역사투쟁’의 개념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인종차별운동의 예술 시민권을 획득하다 <씨너스-죄인들>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씨너스-죄인들>은 미국사회 인종차별 문제를 독특한 스토리와 영화기법을 통해 다루면서 감동을 안겨준 영화다. 한국사회 역시 OTT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영화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마이클 B. 조던은 영화에서 쌍둥이 역을 극적으로 소화해냈다. 두 쌍둥이 형제의 다른 성격을 조금씩 교묘하게 다른 몸짓과 목소리 등을 통해 전달해 두 인물 간 차이를 극적으로 연기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영화 '블랙 팬서'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차별과 혐오,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와의 힘겨운 투쟁을 신선한 음악들과 괴기스러움을 섞어 표현했다.
숨기지 않는 정치적 메시지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비교적 조용했던 지난 시상식과 달리, 가장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시상식 중 하나였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이란 전쟁, 팔레스타인 학살 등 격변의 국면 속에서 열린 시상식으로 헐리우드가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 분노와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전히 보수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제와는 달리 진보적인 발언들이 이어졌던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상식에도 진보적인 언사들이 이어졌다. 아니, 이번 시상식은 더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가 발화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출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국제영화 부문 시상자로 등장해서 가슴에 “No a la Guerra(전쟁 반대)” 배지를 달고 무대에 올라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발언하며 반전평화의 목소리를 울렸다. ABC 방송의 지미 키멀 방송인 역시 지난 트럼프 대통령의 방송인들 탄압 관련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발언했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긴 난장판"에 대해 사과하며, 다음 세대가 "상식과 품위"를 되찾길 바란다고 말해 현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를 비판했다.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은 "모든 어른은 모든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투표하지 말자"고 말하며 제임스 볼드윈을 인용해 경고했다. 단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올 디 엠프티 룸스>의 제작진이 무대에서 텍사스 로브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잭키 코잘스의 어머니에게 마이크를 넘기자 어머니는 "총기 폭력은 이제 아이들과 10대들의 사망 원인 1위"라며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또한 시상식 바깥에서도 팔레스타인 학살에 반대하는 반전평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평화 메시지를 이어갔다.

‘다양성’과 ‘투쟁하는 자’, 그리고 ‘공감’ - 진보의 시사점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모로 진보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이번 아카데미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정신 나간 요구"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수상 자격 요건에 다양성 조항을 포함시키면서 화제로 시작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씨너스-죄인들> 등 주요 수상의 주제들이 모두 인종차별과 관련된 영화였다. 촬영상 수상자가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흑인·필리핀계 여성 촬영감독이었다는 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삽입곡 Golden이 수상하며, 한국의 한복, 판소리, 사물놀이 등이 오스카 무대에 올랐다는 점 등은 소수자, 다양성, 인종차별반대 등이 이제 문화적 대세가 되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결국 다양성은 보수적 시상식에서조차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다. 진보정치의 의제 중 다양성이 보편성이라는 것. 이를 어떻게 확대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불의에 저항하는 것, ‘투쟁’이 이제 문화예술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상 정도에서 머물렀던 투쟁하는 주인공의 부각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매우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씨너스-죄인들> 〈프랑켄슈타인〉 등 목적과 입장은 다르지만 무엇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영화 예술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투쟁하는 자’가 보수적인 아카데미라는 영화시 시상식에서 시민권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진보정치가 투쟁하는 것의 보편성을 만들어내라는 숙제가 던져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역시 영화는 영화, 예술은 예술이기에, 아무리 훌륭한 메시지를 가졌다라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과 얻지 못하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아카데미는 시사했다. 가장 많은 부문에 후보로 오른 <씨너스-죄인들>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주요 부문을 수상하게 된 것은 그 투쟁을 어떻게 대중들이 공감할수 있게 할 것인가에서 갈린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진보정치에게 던지는 어려운 질문임에 틀림 없다.

'플랜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치는 사람들의 상식을 누가 만들어 가느냐의 싸움 - 골보다 뜨거웠던 2026 월드컵의 행동과 메시지들 (0) | 2026.07.14 |
|---|---|
| 2026년 칸 영화제가 진보정치에 던진 질문- 옳음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0) | 2026.06.15 |
|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보정치의 무가치함과 싸워야 할 때 (0) | 2026.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