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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Arts

2026년 칸 영화제가 진보정치에 던진 질문- 옳음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 2026 79회 칸 영화제 포스터

 

박찬욱 심사위원장과 나홍진 감독의《HOPE》의 수상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2026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 심사위원장 박찬욱 감독 (사진=연합뉴스)

 

2026년 칸 영화제 수상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황금종려상은 보수적 종교 공동체와 진보적 복지국가 사이의 문화적 충돌을 다룬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Fjord-피요르드》가 수상했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러시아 사회를 풍자한 영화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Minotaur-미노타우로스》가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감독의 《The Dreamed Adventure-끔꾸었던 모험(직역)》가 감독상은 감독상: 《Fatherland-파더랜드》의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와 《The Black Ball-라 볼라 네그라》의 하비에르 칼보·하비에르 암브로시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각본상은 《A Man of His Time-보호자》의 에마뉘엘 마르, 여우주연상은 《All of a Sudden-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의 버지니 에피라와 타오 오카모토가 공동 수상했고 남우주연상은 《Coward-카워드:겁쟁이》의 에마뉘엘 마키아와 발랑탱 캉파뉴가 공동 수상했다.

▲ 나홍진 감독의 영화 HOPE 포스터, 출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올해 수상작들은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 지면을 통해 말하는 내용은 세평과 평론가들의 소개글을 참고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 영화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하나 같이 세계의 일상이 되어 있는 사회적 갈등을 다루지만 누구도 쉽게 악마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영화 Fjord 포스터, 출처: NEON

 

황금종려상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주의 《Fjord》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루마니아 출신의 보수적 종교 가족이 노르웨이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진보적 복지국가와 전통적 가치관의 충돌로 읽힌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쪽 편에만 서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 그 자체만 냉정하게 응시한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수상작이 “세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제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조명했다”고 평가했다. 《Fjord》가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아마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왜 존재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영화 The Dreamed Adventure 포스터, 출처: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Minotaur》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러시아의 부패와 전쟁을 비판적으로 그리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복잡한 욕망 또한 함께 보여준다.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단순한 비판으로 인간을 단순화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The Dreamed Adventure》 역시 정치적 메시지보다 국경과 문화의 차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세밀하게 따라가며 인간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한다.

 

 

칸 수상작들에게 발견되는 키워드 - 공감 

올해 수상작들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공감의 정치학’이다. 오늘날 진보정치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것 아닐까. 최근 진보정치는 자신을 ‘옳은 편’으로 규정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인권, 다양성, 평등, 기후위기 대응 등 모두 중요한 가치다. 문제는 비굴하지도 비겁하지도 않게 이 가치를 말하는 정의당의 진보정치는 왜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거듭받고 있는 것일까?

 

문제를 우리에게서 찾는다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한다. 우리의 가치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 가치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곧 대중들은 가치가 아니라 태도에 반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 바로 이 가치를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들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오늘날 진보정치가 가장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지점과 정확히 겹친다.

전세계 정치의 극우적 현상, 포퓰리즘 정치의 대두는 바로 이런 것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노동계급이 트럼프에게 이동했고, 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이 산업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정책은 약자를 위한 것인데 정작 상당수 시민들은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우리의 진보정치는 사람들의 분노를 설명하려 해왔다. 그러나 현시대 사람들은 내가 왜 분노하는지 설명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분노하는 것을 이해받기를 원한다. 지방 소멸에 대한 불안, 여성들의 불안감, 청년 남성들의 경쟁 압박, 중장년층의 일자리 위기, 종교가 느끼는 권위로부터의 박탈 등 진보는 종종 이러한 감정을 사실관계의 문제나 인식의 문제로 취급해 왔다. 다소 극단적 비유일지 모르지만. 윤석열의 변호사가 말한 ‘나는 계몽되었다’는 말처럼 진보정치는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당신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러저러한 사회적 구조문제 때문이며, 이를 이러저러하게 바꿔야 한다는 점을 계몽했을지 모른다. 대중은 나의 분노를 이해해주는 이들과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인데, 우리는 이해 보다는 설득에 주력한 것이다.



2026 칸의 답답함 - 영화가 아닌 정치    

그런데 이번 칸 영화제의 수상작들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좋은 영화는 관객을 계몽하지 않는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좋은 영화는 인물을 심판하지 않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도록 만든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진보정치가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면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올해 칸 영화제의 수상 결과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최고상을 받은 작품도,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도, 연기상과 감독상을 받은 작품들도 모두 인간의 복잡성을 존중했다. 어느 누구도 단순한 선악 구도 속에 가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답에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려는 이야기에 마음을 연다. 올해 칸 영화제가 선택한 것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공감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진보정치가 가장 절실하게 회복해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이해의 언어, 공감의 언어, 그리고 이를 이야기로 연결하는 서사의 창조. 여기서부터 진보정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 민주노동당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운동

 

실컷 가게 매상 올려놓았더니 건물주인에 의해 일반적으로 쫒겨나는 중소상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했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진보정치처럼,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수치심과 싸우는 아이들의 급식을 모두가 먹을수 있게 했던 무상급식의 진보정치처럼, 다시 시작할수 있다.

 

▲ 민주노동당 무삭급식조례제정 주민발의 서명운동

 

칸은 영화제 중 진보성을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영화제다. 올해 칸은 영화가 아니라 정치에게. 아니 진보정치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보정치가 그만큼 답답했던 거다. 칸의 묵직한 질문에 진보정치의 작지만 진지한 답변이 필요할 때다.

 


김종민 (또다른플랜 공동대표, 정의당 은평을 지역위원장)